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는 성별에 관계 없이 4가지 중 하나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나. 우성 알파, 열성 알파, 열성 오메가, 우성 오메가. 개인의 알파 오메가 성질은 부모의 성질을 강하게 물려 받는 유전적 현상이고 현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알파는 강자, 오메가는 천대 받는 분위기야. 또한 고유의 성질이 생김에 따라 성별보다는 성질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어. 현대의 생물학자들이 수많은 표본을 토대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성질의 유전 현상은 일종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성 알파 + 우성 오메가 = 우성 알파 / 열성 알파,

우성 알파 + 열성 오메가 = 열성 알파 / 열성 오메가,

열성 알파 + 우성 오메가 = 우성 오메가 / 열성 오메가,

열성 알파 + 열성 오메가 = 열성 오메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패턴을 따라서 거의 이런 조합으로 태어난다고 해. 특히나 흥미로운 사실은 알파건 오메가건 아이를 가질 땐 우성보다 열성 유전자가 더 크게 작용하며, 오메가는 DNA 자체에 열성 인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성+우성의 조합이더라도 열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기술로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은 아이를 가지는 오메가가 열성일 경우 알파가 우성이더라도 절대 우성 인자가 나오지 않고. 반대로 알파가 열성일 경우에는 오메가가 우성이라도 알파가 태어날 수 없다는 것.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난 전정국과 김태형은 둘 다 집이 잘 사는 편이야. 오메가가 심각하게 천대 받는 세상인 만큼 보통의 대기업 간부들이나 웬만큼 좀 산다 하는 집안은 남에게 꼬투리 잡힐 구석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다들 우성 알파x우성 알파의 조합을 선호해. 아이는 부모의 씨와 비싼 값에 거래되는 우성 오메가의 씨를 가지고 인공 수정을 통해 가지는 편. 당연히 전정국의 부모와 김태형의 부모 역시 우성 알파x우성 알파의 조합이고, 둘의 집안은 어른들끼리 꽤나 친한 편이라서 자식끼리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어른들의 나름 애정이 담긴 제안 하에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기로 해. , 전정국의 경우는 위에 전정현이라는 열성 알파 형이 있는데 부모가 가업을 물려 받을 우성 알파를 원해서 또 한 번 아이를 가졌어.

 

 

 

근데 막상 부모님들이 애를 낳고 보니까 김태형은 정상적인 우성 알파로 태어났는데 전정국이 오메가로 태어난 거야. 심지어 열성 오메가에 기존 오메가와는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까지 가지고 태어났대. 집안은 난리가 났지. 대체 어떻게 우성 알파x우성 오메가 조합인데 오메가가 태어나? 그것도 돌연변이로?

 

 

 

정국의 부모님의 경우는 남자 알파x남자 알파의 조합이었는데, 알고보니까 정현을 가졌을 때 씨를 흘려보냈던 알파는 제대로 우성 인자를 가진 알파였으나 이번에 정국을 가질 때 씨를 흘려보냈던 다른 알파는 사실 열성 인자를 가진 알파였던 거야. 결국 열성 인자가 들통난 알파는 집에서 쫓겨나고 남은 아빠 혼자 정국이를 떠맡게 돼. 물론 아빠에게는 달가울 리가 없지. 우성 알파의 자식이 열성 오메가, 그것도 돌연변이라니. 이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야. 하나 다행인 점은 정국이가 오메가임에도 불구하고 임신 기관을 가지지 않고 태어났다는 거야. 적어도 어디서 멋대로 애를 가졌다가 오메가인 것을 걸릴 일은 없다는 거지. 그래서 정국의 아빠는 고민하다가 정국이를 대외적인 알파로 키우기로 결심해. 전정국이 아주 어릴 때부터 오메가 특유의 발정기인 히트 사이클을 억제하는 약을 먹여. 그리곤 어린 정국에게 겁을 주듯 말하지.

 

 

 

-정국아. 너는 태어날 때 부터 큰 병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래서 항상 이 약을 챙겨 먹어야 해.

 

-까먹고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글쎄. 너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을 걸?

 

 

 

어린 정국은 그냥 단순히 '. 내가 몸이 약해서 먹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오메가라는 사실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알파인 줄 알면서 살아가.

 

 

 

 

 

전정국과 김태형은 집안이 서로 친한 만큼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함께 다니는 사이가 돼. 거의 서로의 모든 시간에 함께 할 만큼 친한 사이. 그러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향이나 서로가 꺼려하는 것들을 세세하게 알고 있어.

 

 

 

정국의 경우는 약간 주변에 대해 무심한 면이 있으면서도 자기와 관련된 것들에게는 꽤나 다정함을 동반한 집착을 하는 경향이 있었어. '자신의 것'이라고 설정한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모르는 게 생기면 괜히 자존심이 상하는 타입이었지. , 어렸을 때부터 집안 후계자로서의 교육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걸까 약간 권위적인 면도 가지고 있어서 자기보다 낮은 서열로 인식되거나 힘으로 밀리는 사람이 기어 오르는 것을 은근히 싫어했어. 그런 정국이가 유일하게 져주는 사람은 태형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지냈기에 '자신의 것' 중에서 제일 집착하는 탓일까, 정국이는 태형이 말이라면 하던 일도 내려놓고 그 말을 들어줬고 태형이가 아무리 선을 넘어도 몇 번 욕하다가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넘어가는 편이었어.

 

정국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태형이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행동하는 것. 태형이 역시 백날 천날 촐싹거리면서 정국이에게 장난을 치고 맨날 욕 먹어도 정국이 옆을 벗어나지는 않아. 그게 자기에게 다 져주는 정국이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딱 하나의 선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에.

 

 

 

그럼 천하의 전정국도 참게 만드는 태형이는 어떤 사람이냐, 태형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성격 역시 낙천적인 편이라 인기가 많았어. 생김새는 양아치처럼 생겼으면서 스스로가 미성년자임을 자각하고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담배나 술은 일절 손대지 않았지. 세상 까칠하게 생긴 태형이가 꽤 도덕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신기하게 생각했어. 딱히 누군가에게 벽을 세우지도 않고 누군가가 벽을 세워도 단숨에 뚫을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랑둥이.

 

 

그런데 단 한 가지. 태형이는 오메가에게 만큼은 부정적이다 못해 경멸의 시선을 보냈어.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오메가를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하는 일이 드물었고, 그걸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태형이 역시 그게 당연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지. 그 생각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바꾸려는 생각 역시 하지 않아. 왜냐면, 어차피 자기는 알파라서 저런 취급 받을 일이 없거든. 참 이기적이게도 당연한 마음이었지.

 

거기에 오메가는 히트 사이클이 오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일면식 조차 없는 사람 일지라도 일단 도와달라면서 헤프게 다리를 벌리잖아. 오메가 특유의 히트 사이클의 존재는 사람 간의 감정과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태형이에게 더더욱 오메가에 관한 악감정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어.

 

 

 

 

국뷔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꽤 상류층 집안의 알파들이 모여있는 학교야.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보건 시간에 성교육을 진행해. 알파와 오메가의 차이, 히트 사이클과 러트 사이클 등에 관한 것들을 주로 공부하지. 물론 아무도 귀담아 듣지는 않아. 아이들에게 성교육 시간은 나른한 수업 도중에 잠자거나 노가리 까기 딱 좋은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오메가가 히트 사이클을 맞이했을 때는 팔목에 붉은 색의 덩쿨이 생깁니다. 반대로 알파가 러트 사이클을 맞이했을 때는 푸른 색의...."

 

 

 

태형이 역시 앞에서 열심히 히트 사이클에 대해 설명하는 교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참 부질 없다고 생각해. 자기는 평생 천박한 오메가와는 어울릴 일도 없으며, 만약 언젠가 연애를 하게 된다면 제 옆자리에 있는 건 아마도 정국이가 아닐까 하고 늘 생각했거든. 대충 팔을 베고 옆으로 엎드려서 빈둥거리던 태형이는 슬그머니 옆에 앉은 정국이를 올려다봐. 핸드폰으로 요새 한참 유행하는 게임을 하던 정국이는 시선을 느끼고 태형이를 내려다 보지. 눈을 꿈뻑거리다가 히- 하고 특유의 네모난 입모양으로 웃어보이는 태형을 보면서 정국이가 입모양으로 말을 걸어.

 

 

'뭘 봐.'

'너 얼굴.'

'잘생겼지?'

'존나게.'

 

 

 

잘 생겼냐는 물음에 벌떡 몸을 일으켜서 쌍따봉까지 드는 태형이를 보고 결국 정국이 역시 웃음이 터져. 히히 웃는 태형이가 귀엽다는 듯이 태형이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곤 연필을 들어서 공책 귀퉁이에 자그맣게 글씨를 적지.

 

 

매점 고?

 

 

밥보다 빵이나 간식 같은 주전부리에 더 환장하는 태형이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 신난 태형이는 정국이가 쥐고 있는 연필을 낚아채서 얼른 종이에 사각거려.

 

 

 

전정국 지갑 거덜내기 가능합니까?

 

 

 

장난감을 탐내는 어린 아이처럼 눈을 반짝 빛내며 공책을 들이미는 태형이의 모습은 하루종일 별 의미 없이 건조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상태였던 정국이를 풀어지게 만들기 충분했어. 제 앞에 놓인 공책을 바라보던 정국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태형이 손에 들린 연필을 가져가 답을 적었지.

 

 

끝나고 햄버거도 먹으

 

 

 

정국이가 글씨를 다 쓰기도 전에 태형이가 활짝 웃으면서 정국이 팔을 붙들고 붕붕 흔들어댔어. 누가 봐도 '나 신났어요!' 하는 얼굴이었지. 정국이는 차마 비키라고 밀어내지도 못할 만큼 신난 태형이에게 맞춰 고개나 까딱거리면서 수업이 얼른 끝나길 바라.

 

 

 

 

매점도 털고, 급식도 털고, 나른함에 젖은 상태로 지루한 수업까지 모두 마친 국뷔는 함께 교문을 나서. 태형이가 살갑게 치대고, 정국이가 적당히 맞춰주면서 투닥거리는 텐션을 유지하면서 햄버거를 먹으러 가던 국뷔는 길거리에서 나뒹구는 한 오메가를 마주치게 돼.

 

 

오메가는 약에 절은 상태로 사경을 헤메고 있었어. 주변에 풍기는 비릿한 정액 냄새와 대마 냄새, 퉁퉁 부은 눈, 옷자락에 묻어 있는 핏자국 등이 그 오메가가 어느 취급을 받고 사는지 분명하게 증명해줬지. 정국이는 원래도 자기 것이 아니라면 관심을 두지 않는 타입이라 오메가를 보고도 딱히 별 생각을 하지 않았어. 문제는 태형이. 태형이는 오메가의 존재를 알아차리자마자 인상을 팍 쓰면서 날카롭게 말했어.

 

 

"존나 더러워. 길거리에서 왜 저런대?"

"글쎄. 저럴 사정이 있었나보지."

"안 봐도 뻔해. 힛싸 와서 아무나 붙잡고 앙앙댔을 거야."

 

 

저 팔목 주변에 빨간 덩쿨을 보라며 경멸이 가득 담긴 어조로 비아냥거리는 태형이었지만 정국이는 굳이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어. 물론 눈 앞의 오메가는 누가 봐도 피해자였고 태형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옳지 못한 말이었지만, 가뜩이나 오메가 때문에 기분이 좋지 못한 태형이의 생각에 굳이 태클을 걸어가면서까지 정정해 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정국이는 그저 태형이의 한 쪽 어깨를 끌어당겨서 그 장소를 빠르게 벗어나.

 

 

 

"정구욱... 나 입맛 떨어졌엉."

"까탈스러운 새끼. 가지가지 한다 진짜..."

 

 

 

아무래도 오메가를 마주한 일이 생각보다 더 거슬렸던건지 태형이는 결국 아쉬운 말투로 햄버거가 땡기지 않는다고 말해. 정국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태형이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자기도 집으로 향하지. 하교길에 오메가를 마주친 사건을 제외하면 정국이에게 오늘 하루는 그저 나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었어. 김태형도 집에 가서 게임 좀 하다보면 기분 풀리겠지. 따위의 잡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정국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아빠와 형을 마주쳐.

 

"둘이 어디 가?"

"저녁에 R그룹 파티. 너까지 데리고 가기엔 불편할 거 같아서 정현이랑 둘이 가려고."

"아아, . 다녀오세요."

 

 

두 사람을 배웅하자마자 노곤함이 몰려온 정국이는 한숨 자고 일어날 생각으로 방으로 향해. 가방을 휙 던지고, 교복을 허물 벗듯 대충 벗어던지고, 자기 몸도 침대 위로 던져버리지. 언제 눈을 감았는지 의식할 새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든 정국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에서 깨게 돼.

 

 

잘 자던 정국이는 갑자기 자기 몸을 에워싸는 뜨거운 열기에 놀라서 발작하듯이 눈을 떠. 어지러운 머리와 떠지지 않는 눈에 감기라도 온걸까 싶어서 약이라도 먹으려고 하는데,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이렇게까지 아팠던 적이 있나 싶으면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국이는 간신히 침대 한 구석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들어서 태형이에게 전화해.

 

 

 

-. 나 보고 싶어?

"...,태형..."

 

 

 

정국의 예상대로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던 태형이는 정국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냉큼 받았어. 근데 정국이 목소리가 뭔가 이상한 거야. 굉장히 낮게 잠겨서 짐승처럼 그르릉대는 목소리. 깜짝 놀란 태형이는 꽥 소리를 지르지.

 

 

 

"! 전정국 너 아파?!"

 

 

 

제정신이 아닌 건지 제가 꽤 크게 소리를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이는 대꾸하지 못하고 낮게 앓는 소리만 내고 있어. 당황한 태형이는 얼른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서 정국이네 집으로 향해. 태형이의 목소리에 대꾸조차 못하는 정국이는 지금 딱 죽기 직전이었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지. 이성을 잃기 전 정국이가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은 ', 내가 약을 먹었던가.' 하는 거였어.

 

 

정국이는 보통 하교 후 집에 와서 약을 꼭 챙겨먹곤 했는데, 오늘따라 오메가와 마주쳐 예민하던 태형이에게 무덤한 척 하면서도 온 신경을 쏟은 탓에 약을 깜빡하고 만 거야. 정국이가 먹던 약은 히트 사이클을 억제해주고 있던 약이니 당연히 약을 먹지 못한 탓에 강제로 막고 있던 히트 사이클이 몰려온 거지.

 

 

보통 오메가가 히트 사이클을 맞이하면 팔목 주변으로 빨간색 덩쿨이 생기고 알파가 러트 사이클을 맞이하면 팔목 주변으로 파란색 덩쿨이 생겨. 몸이 흥분했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지. 정국이도 히트 사이클을 맞이한 오메가인 만큼 팔에 붉은 색의 덩쿨이 생겨났어.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 정국이의 손목에 생긴 빨간색 덩쿨 위로 파란색의 꽃들이 같이 생겨난 거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덩쿨을 손목에 그려낸 정국이는 일반적인 오메가처럼 누군가 자신의 욕구를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누군가에게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해.

 

 

정국이는 분명 검사 결과로는 오메가의 성질을 띠고 있지만 돌연변이인 탓에 알파의 성질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알파의 성질이 히트 사이클만에서 발현되는 타입이었던 거지. 밀폐된 공간이 정국이의 페로몬으로 위험하게 차오르기 시작했어. 정국이는 대체 어떻게 몸을 가눠야 할 지를 모르고 사납게 벅벅 긁고 있을 뿐이었지.

 

 

그때, 집에서부터 달려오느라 땀에 흠뻑 절은 태형이가 정국이의 방 문을 쾅 열고 들어왔어.







태형이는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정국이는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 입술만 깨물고 있고방 안에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가득해낯선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다가 구깃 하게 주름져 흐트러진 이불이 태형이 시야에 들어왔어그게 꼭 정국이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 지 알려주는 것 같아서 태형이는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정국이에게 다가가코앞에 자기가 서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정국이 탓에 괜히 조급해져.

 

 

"뭔데 전정국그냥 아픈 거야아니면 러트?"

"......."

"힘들어병원 갈까?"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은 일정 주기를 가지고 규칙적으로 돌아오지만 알파의 러트 사이클은 2차 성징 이후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게 불규칙한 주기로 돌아와그리고 아직 본인을 포함한 태형의 주변 또래 중에서는 러트 사이클이 발현된 경우가 없었어이론으로 배우기만 했지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닥치자 말 그대로 멘탈이 가루가 된 태형은 어찌할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러존나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해좆같은 성교육이라도 제대로 들을걸아 이러다 전정국 뒈지는 거 아니냐고!

 

 

안절부절 못하던 태형이는 문득 아직까지도 정국이가 시트 자락을 꽉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정국이의 손은 새하얗게 질려있는 상태였지힘이 너무 들어간 탓에 손등의 힘줄이 볼록 튀어나온 상태였어그걸 보고 일단 손에 힘부터 빼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태형이는 정국이에게 손을 뻗지.

 

 

정국이에게 손을 뻗는 태형이의 눈에 정국이 손등의 힘줄이 팔목을 타고 팔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어그것을 바라보던 태형이는 누가 바닥에서 자기를 잡는 마냥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돼정국이의 팔목에는 지금껏 자기가 천대하며 살아온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 징표붉은 넝쿨이 자리하고 있었거든.

 

 

"......"

"......"

"너 씨발 너 오메가야?"

 

 

 

정말로 진부한 표현이지만태형이는 누가 자기 뒷통수를 있는 힘껏 한 대 갈긴 것처럼 멍해졌어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멍청하게 버벅거렸지전정국이 오메가과장 살짝 덧붙여서 자기랑 거의 평생을 같이 지내온 '전정국이 오메가라고?

 

 

 

태형이는 어릴 때부터 오메가는 배척해야 하는 존재라고 배웠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지만정국이를 배척하는 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어대체 눈앞의 정국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는 태형이는 머릿속이 백짓장 같았지그런데 뚫린 입이 눈앞의 오메가를 인식한 건지 자기도 모르게 그저 본능적으로 차가운 말들을 줄줄 뱉기 시작했어.

 

 

 

"너 뭐야내가 아는 전정국이 맞긴 해?"

"......"

"그동안 발정난 거 어떻게 숨기고 살았어나 옆에다 놓고 반찬 삼아서 혼자 하고 그랬어?"

"......"

"와 씨발... 더러워서 말이 더 안 나오네."

 

 

 

치밀어오르는 배신감을 이겨내지 못한 태형이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여전히 정국이는 아무 반응이 없어.

 

 

"씹새끼야 뭐라 말 좀 해보라고!"

 

 

 

태형이는 결국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르고도 바닥을 쳐다보면서 씩씩거리는 태형이의 귓가에 문득 정국이가 이를 꽉 깨물고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

 

 

드디어 들려온 목소리에 태형이가 번쩍 고개를 들었어태형이의 시선과 정국이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지태형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풀면서 다시 가시 돋힌 언사를 내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정국이가 팔을 쭉 뻗어서 축 늘어져있는 태형이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겼어무방비 상태에서 기습 공격에 대처하지 못한 태형은 그대로 끌려와 침대에 내동댕이 쳐졌지.

 

 

 

 

 

 

정국이가 정신을 차린 건 병원에서였어소독약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고요한 공간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눈을 떴지몸을 일으키다가 살짝 지끈거리는 머리 탓에 휘청한 정국이는 아무도 없는 독실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침대 머릿맡 근처의 호출 벨을 눌렀어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실 안으로 들어온 정국이의 담당 간호사는 정국이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어.

 

 

"환자분 일어나셨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 좀 해주세요."

"설명은 아마 보호자분이 오시면 해주실 거예요몸은 좀 괜찮으..."

"설명."

"......"

"지금 해달라니까요."

 

 

 

말을 돌리려는 간호사가 못마땅했던 정국이는 무표정하게 간호사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설명을 요구했어그러나 요구를 제대로 들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긴장한 것 같은 간호사는 입을 열지 않아답답한 마음에 결국 얼굴이 일그러진 정국이가 다시 입을 열어 재촉을 하려고 할 때였어.

 

 

"좀 괜찮아?"

 

 

정국이의 형정현이가 병실 문을 열면서 들어왔어정현이는 들어오면서 간호사에게 눈짓으로 나가달라고 부탁했지그 시그널을 칼같이 알아들은 간호사는 헐레벌떡 병실을 빠져나갔고빠른 걸음으로 나가는 간호사의 뒷모습을 보던 정국이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넘기며 침대에 다시 털썩 누웠어.

 

 

"기억이 나긴 해?“

 

 

형이 묻는 기억은 히트 사이클 당시의 기억이겠지눈치껏 알아들은 정국이는 고개를 좌우로 도리질쳤어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고갯짓으로 대답하는 정국이를 보고 정현이는 난감한 기색에 빠졌지.

 

 

진짜로 하나도 안 나정말로?”

 

 

끄덕끄덕재차 물어오는 정현이의 질문에 정국은 다시 한 번 고갯짓으로 대답했어정국이는 정말진심으로 그때의 상황이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거든그나마 꿈을 꾼 것처럼 희미하게 기억나는 거라곤 갑자기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열이 올라왔다는 것그리고 그 근처에 저에게 익숙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는 것억지로라도 기억을 되새김질 해보려 노력하던 정국이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정현에게 질문을 해.

 

 

오늘 며칠이야?”

“22너 정신 잃고 이틀 지났어.”

김태형은?”

 

 

정국이는 단순히 자신이 깨어나지 못한 이틀 동안 태형이가 뭘 하고 지냈을지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이었어김태형은 지금 뭐해라는 뜻의 물음이었지정국이와 태형이에게 이틀이라는 시간동안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상황은 꽤 드문 일이었거든그런데 정국의 질문에 왠지 모르게 뜸을 들이던 정현이가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 옆 보조 의자에 털썩 앉았어.

 

 

정국아.”

.”

너 오메가야.”

 

 

뜬금없이 너 오메가야.’하는 말로 말문을 연 정현이가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정국이는 돌연변이 열성 오메가로 태어났고 아빠는 그 사실을 모두에게 숨겼다는 것정국이 어릴 때부터 먹던 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히트 사이클을 억제하기 위한 약이었다는 것그리고 그 날 정국이 아팠던 이유는 아마도 약을 챙겨 먹지 않아서 억지로 막고 있던 히트 사이클이 터졌기 때문이라는 것까지평생을 본인이 우성 알파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정국이에게는 참 현실 감각이 없는 이야기들이었어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마냥 아무 생각 없이 형의 말을 듣고만 있었지.

 

 

 

아빠가 병원 사람들 입단속 시켰어애한테 허튼 소리 말라고.”

아아...”

아마 그래서 간호사님도 아까 말 못해준 걸 거야.”

“...어차피 언젠가 알게 될 일을.”

그리고 너 힛싸 온 뒤에 팔목에 붉은 넝쿨이랑 파란 꽃이 같이 생겼다고 그랬다더라.”

누가 그래?”

태형이가.”

 

 

태형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정국이의 표정이 굳었어순간 가라앉은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병원에서도 아직 네 유전자가 어떤 식의 돌연변이인건지는 확실하게 모르겠댄다너 나름 연구 대상감인 거야인마.’하면서 정현이가 말을 덧붙였지만 정국이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지태형이가 제 손목의 넝쿨에 대해 말했다는 것은 자신이 히트 사이클을 겪을 당시 근처에 있었다는 이야기야방금 정현이의 말로 자신의 근처에 있었던 익숙한 느낌은 태형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정국이는 다시금 정현이에게 질문을 던졌어.

 

 

그래서 김태형 지금 어디서 뭐하는데?”

“......”

.”

 

 

자꾸 태형이의 얘기가 나오면 입을 다무는 정현이 때문에 정국이는 슬슬 짜증으로 물들었어말을 안 할 거면 김태형 얘기를 꺼내질 말던가.

 

 

학교?”

 

 

결국 재차 선택지까지 주며 되물음하는 정국이 탓에 결국 정현이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어.

 

 

몰라.”

“......?”

태형이 안부 모른다고이틀째 집도 안 들어오고 있대.”

 

 

정현이의 말에 결국 짜증을 억누르고 간신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정국이의 표정이 제대로 구겨졌어그러니까지금 형의 말은,

 

 

이틀 동안 김태형 어디서 뭐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거야?”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현이의 반응을 본 정국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자기 팔목에 들어와 있는 주사바늘을 쥐어뜯듯이 빼내갑작스러운 정국이의 행동에 놀란 정현이가 말리려고 손을 뻗지만 팔뚝에 송골송골 맺힌 피를 대충 문지르면서 거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국이가 더 빨랐어침대 옆에 놓인 간이 옷장 안에는 정국이의 옷과 소지품이 가지런히 들어있었지정국이는 급하게 핸드폰을 들고 태형이의 번호를 눌렀어.

 

 

태형이 전화 안 받아신호 가는 거 보면 핸드폰이 켜져 있기는 한데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거 같아.”

그래서?”

작정하고 나가서 연락도 안 되는 애를 대체 어떻게 찾으려고.”

어떻게든 찾아야지.”

 

 

너 때문에 집 나간 애를 찾아서 뭘 어쩔 거냐는 물음이 정현이의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어본인도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지만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아마 태형이가 마음고생을 좀 심하게 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랬던 걸로 보아 정국이의 히트 사이클에 태형이가 연관 됐다는 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지어릴 때부터 제 동생과 친하게 지낸 태형이기에 정현이 역시 태형이에 관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고 정국이와 비슷하게 자기 동생으로 생각해왔어정현이가 태형이를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정국이를 말리려고 할 때정국이의 핸드폰 너머로 끊길 줄 모르고 길게 이어지던 통화 연결음이 뚝 멈추고 전화가 연결됐어.

 

 

김태형.”

-......

어디야.”

-......

두 번 묻게 하지 마어디야지금.

-......공원인데...

기다려.”

 

 

 

태형이가 무슨 공원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정국이는 태형이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어환자복 위에 겉옷을 대충 걸치고 외투 주머니에 지갑을 쑤셔 넣은 후 급한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가는 정국이를 보면서 정현이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지이틀 내내 가족의 연락도친구의 연락도학교의 연락도 다 무시하던 태형이가 정국이의 연락만큼은 단번에 받은 거야.

 

 

나는 너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진짜...”

 

 

오메가를 혐오하는 김태형전정국이 오메가라는 것을 알아버린 김태형그 사실에 충격 받고 집을 나간 김태형전정국 때문에 이틀동안 가출한 김태형다른 전화는 다 무시하다가 전정국 전화는 바로 받는 김태형.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그런 김태형을 찾으러 가는 전정국.

 

 

정현이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국이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생각하기를 포기했어백날 타인이 말해서 뭐해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잘 풀겠지정현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정국이가 거치고 간 침대와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해자신의 친동생인 정국이로 인해 벌어진 일들로 친동생과 다름없는 태형이가 큰 상처를 받지 않길 바라면서.

 

 

 

 

 

 

 

튄다기다린다튈까잡히겠지.

 

 

공원 벤치에 앉아 모래를 운동화 끝으로 파헤치면서 도망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태형이는 복잡한 마음에 스스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려아마 어느 공원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 정국이가 알아서 찾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지금 태형이가 있는 공원은 둘이서는 자주 오지 않았던 곳이거든물론 정국이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자기를 찾아오겠지만.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모든 연락을 무시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정국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뜨자마자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아버렸어사실 이틀 만에 온 정국이의 연락을 보고 약간 안심한 것도 있기는 해.

 

 

그렇게 죽을 것처럼 굴더니...”

 

 

일어나기는 했구나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정국이가 눈을 뜨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나봐조금의 안도감을 느끼던 태형이는 자기 팔목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면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그 날눈이 마주치고 손목이 잡혀 침대로 던져진 태형이는 정국이의 침대 헤드에 머리를 박았어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단발의 신음을 흘리는 태형이 위로 이성을 잃은 정국이가 올라탔지태형이가 아득바득 애를 쓰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원래도 어느 정도 체격 차이가 있는데다 잔뜩 흥분한 정국이는 쉽게 밀리지 않아오히려 약간 난폭한 손길로 태형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목을 살짝 조르면서 태형이의 상의를 찢어내듯 벗겨냈어눈에 불을 켜고 뼈를 따라서 애무하다가 태형이의 하의마저 벗겨낸 정국이는 급하게 태형이의 다리를 벌렸어.

 

 

애초에 태형이는 꽤 예전부터 정국이와 자신이 연애를 하고 몸까지 섞게 된다면 자기가 깔릴 거라고 늘 생각했어체격 차이도 그렇고 성향 자체도 자기가 정국이를 휘두르는 것보단 늘 정국이가 자기를 보듬어주는 걸 더 좋아했으니까 아마 잠자리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애초에 조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황이기 때문에 언젠가 정국이의 아래에 깔려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그 생각은 정국이 자신과 같은 알파라는 것이 전제조건이었어전제가 박살나고 자신이 그렇게나 혐오하던 오메가에게 깔려서 다리가 벌려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그 사실은 아무리 상대가 정국이라고 할지라도 태형이에게 격한 수치심을 안겼어다리가 완전히 벌려지고 정국이의 손이 뒤를 파고 들 때태형이는 결국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지.

 

 

태형이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어갑작스러운 관계에 처음이기도 했으니까 당연히 흥분보다 아픔이 먼저였기 때문에 뒤로 느낄 일은 없었지만혹시나 아주 미세한 신음이라도 자기 입을 통해서 새어나가면 딱 죽고 싶어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지정국이가 흥분을 이겨내려고 쥐고 있었던 시트 자락은 이제 태형이가 아픔을 흘려내려고 쥐고 있었어차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태형이는 정국이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두 눈을 꼭 감았어.

 

 

 

정국이가 허리를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어태형이는 여전히 흠뻑 젖은 눈을 꼭 감고 정국이를 받아내고 있었지그런데 갑자기정국이가 움직임을 멈췄어흔들리던 몸이 갑자기 멈춘 태형이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지눈물 탓에 흐려진 시야에 들어오는 건 숨은 쉬고 있는지조차 의문일 만큼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 정국이었어태형이는 지금 눈앞에 있는 정국이가 알파오메가를 떠나서 자신이 아는 전정국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어그래서 시트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 그 손을 정국이에게로 간신히 뻗었지태형이의 손이 정국이에게 다가갈수록 정국이는 입술을 더 강하게 깨물면서 무릎으로 뒷걸음질을 쳤고머리가 아픈 듯 갑자기 낮게 잠긴 목소리로 짧은 비명을 지르다가 그대로 쓰러졌어.

 

 

태형이는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아 멍하니 쓰러진 정국이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상황을 파악하고 당장 핸드폰을 찾았어계속 잘못 눌리는 숫자 탓에 번호를 누르고 지우기를 한참 반복하던 태형이는 간신히 정국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어정현이와 함께 그룹의 파티에 참석했던 정국의 아빠는 울먹거리면서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말로 정국이가 쓰러졌다고 알려오는 태형의 전화를 받고 정현이에게 파티 뒷일을 맡긴 후 당장 집으로 향했지.

 

 

병원에서는 정국이가 히트 사이클을 너무 오랜 기간 약으로 억제한 탓에 폭주 도중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고 말했어병원에서 정국의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된 태형이는 다시 한 번 꽤나 충격을 받았지자신의 한계치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태형이는 병원을 나서서 무작정 길거리를 걸어 다녔어차마 집에 가서 이 모든 상황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여력도 없었고나 자신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았지.

 

 

그래서 태형이는 모든 연락을 무시하고 공허하게 밖에서 이틀을 보냈어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길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밤이 오면 공원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어이틀이 지나도 여전히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결국 자신이 마음을 추스르는 것보다 정국이 먼저 깨어나버렸지.

 

 

 

 

통화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으려나한참 정국이 쓰러졌을 때의 일을 상기하고 있는 태형이 앞에 드디어 인기척이 느껴졌어태형이는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떴지앞에는 예상했던 대로 정국이가 두 뼘 정도 거리를 두고 서서 벤치에 앉아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어공원을 찾으려고 뛰어다녔는지 땀방울이 정국이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지만 정국이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태형 역시 굳이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어태형이는 그저 정국이를 똑바로 마주치고 빤히 바라보다가 조용하게 말했어.

 

 

 


"뻔뻔하네."

"......"

“......오메가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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